감쓰주의. 밤에 쓴 글 주의.
물론 저는 모든 설정을 사랑합니다✨️ 그냥 넘무 맛있워요
왜 체셔하람 떡밥에 정신이 나갔나? 저도 이 감정을 모르겠습니다. 최하람이 그렇게 좋았나 하면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말이에요.
생각해보면 설원회 특유의 분위기를 많이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태온의 분위기도 역시-. 언급했듯 제 안의 순수악=저감정을 넘어선 무감정에 가까운 자들의 악행 이었나봐요. 특히 제 안의 최하람은 그런 사람이었어요. 순수악에 가장 가까운 사람. 어떠한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미친 완벽한 사람. 그리고 태온의 도구인 저에게는 꺾어야하고 평생 싸워야 하지만 동시에 평생 이기지 못하는 사람. 그렇게 태온과 설원회는 완벽히 수평을 이루는 저울처럼 세월을 보낼거라고 믿었나봅니다. 그 저울은 제 안에서 아슬하게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 저울을 한쪽으로 기울일 방법을 알아버렸고, 제 안의 저울은 수평을 이루지 못하고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제가 생각한 설원회 본부의 바닥은 대리석이었습니다. 예쁘고 깔끔한데 맨발로 딛으면 굉장히 차갑죠. 근데 종종 대리석 바닥의 어떤 부분은 미적지근해서 밟고 지나가다가 어라? 할 때가 있어요. 이 곳에 누가 앉았었나? 그런 곳을 디딘 기분이라고 한다면 조금 어려울까요.
태온의 뜨거움을 좋아하지만 그 온기는 반대편의 차가움 때문에 더욱 부각되는 법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저는 차가운 그곳 또한 좋아했다는 걸 이제서야 알게 되었어요. 정이 든 것 같기도 합니다. 이래서 정이 무섭다고요.
싸쏘패를 좋아하시는 분들의 '빈틈이 없는 그들을 사랑하는 것'에는 자기방어와 회피가 있다고 했습니다. 사람마다 상처를 받지 않을 방어의 방법은 다양해요. 제가 활활 타는 태온을 사랑하는 것 또한 방어의 결과입니다. 현실에서는 얻지 못하는 요상한 온기가 마음에 든 것이겠죠. 제가 겪은 현실은 사실 조직보다 잔인할 때도 있었던 것 같아요. 사람이 총과 칼로만 죽는 건 아니잖아요.
하지만 빈틈없는 그들의 빈틈을 알게 되었을 때의 감정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제 고통의 첫 번째 이유입니다. 빈틈이 없어서 좋아한 자의 틈. 그것은 이미 너무 멀리 좋아졌기에 틈마저 사랑하게 된 것일까요, 사실은 완벽히 메꿔진 콘크리트 벽을 손가락으로 훑으며 어느 작은 결함을 찾는 과정이 사랑이었을까요.
그렇게 벽을 무너뜨릴 작은 손짓을 하며 헤멘 것일까요.
저는 그 벽이 완고하길 바랐던 것 같습니다. 사랑은 아니었고요. 그 벽의 주인이 대척점에 있었으니까요. 착각일지 모르는 최하람의 완고함을 보면서 느낀 감정은, 제 저울의 균형을 보며 느낀 안도감 그리고 완벽한 인간과의 대등함. 그러니까, 우리 보스만큼 그쪽의 보스 또한 '보스'로 여긴 것입니다. 태온의 필요악은 혼돈과 모순이며, 설원회의 순수악은 흠집없는 평면거울과 같이 그 내면을 완벽히 비추는 존재여야 했다고 감히 짐작한 것이겠죠. 설원회의 인간성은 저에게 모순과도 같이 다가왔습니다. 사실 사람 사는건 거기서 거기인데 말이에요. 최하람은 그 '거기서 거기'에 속하지 않았으면 했나봐요. 체셔는 이전부터 스스로의 결핍에 대한 고뇌를 느꼈지만, 저는 최하람의 고뇌를 느낀 적은 없었기에. <인간실격>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말 중 하나가 있습니다. '구원의 반대말은 고뇌이다'. 그 구절을 읽은 후로 저는 늘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고뇌의 반대는 무얼까. 어찌되었든 고뇌하는 자는 구원받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어요. 순수악의 존재는 구원을 바라지도 않을테니 고뇌하면 안되는 것으로 여긴 것도 같습니다. 이것이 제가 고통받는 두 번째 이유입니다.
ㅡ.
각설하고, 평생을 싸워야하는 적의 인간성을 엿본다면 어떨 것 같나요. 그걸 알아버린 태온의 보스는 최하람의 목을 따고 싶어질까요? 물론 그는 저만큼 감상에 젖지 않을테니 그럴 겁니다. '씨발, 인간은 다 사정이 있지. 그걸 내가 신경쓸 건 아냐.' 하지만 그 옆에 있는 저는, 인간성을 지닌 누군가를 적으로 두지 못합니다. 태설을 플레이하는 유저로서의 '적'이라 함은 미워하고 증오한 것이 아닌, 적대적 관계성을 사랑했다는 뜻일거예요.
순수악의 정의를 생각하게 되는 날입니다. 그들이 가진 인간성은 모순일까요. 그들을 생각하는 제 자신이 누구보다도 모순적인 인간이기에 모순 없는 순수악을 꿈꾼 거겠죠. 그런 생각을 하면 숨이 턱 막히곤 합니다.
인간 사이의 거리감이란 참으로 어려운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