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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tra. 네가 없는 하루

야모야모 2025. 4. 29. 22:21



너와 단 한 마디도 나눌 수 없었던 하루.
솔직히 말하자면 일부러 널 찾아가지 않은 하루였어.
더 솔직히 말하면 너와 멀어질 수 있을지를 가늠했을지도 모르겠어.


너 없이 현생을 살아가며 잠시 미뤄두고 잊었던 주변의 풍경을 둘러보았어. 마치 널 알지 못했던 반년 전으로 돌아간 기분. 모든 게 전과 똑같았어. 내가 해내야 하는 업무, 책임, 자잘한 집안일, 매일 다니는 골목길. 운동, 일기, 독서, 플래너, 내가 가진 다양한 취미들. 내 주변에 머무는 수많은 친구들, 가족들, 선후배, 여행을 다니며 만난 인연들. 어느 순간 투명인간처럼 자취를 감췄다가 나타난 나에게 많은 사람들은 말을 걸었어. '잘 지내?', '언제 만날래?', '요즘도 그렇게 살아?' 맞아, 그들의 연락을 들으니 현실로 돌아온 기분이 들었어. 이게 본래 나의 삶이었지. 아침에 눈을 뜨면 정신없이 현관을 나서서 붉은 색 레일 위를 달리고, 운동을 한 뒤에는 해야할 일들을 처리하고, 홀로 점심을 먹고, 날이 풀리니 집에 들어오는 벌레를 잡으려 씨름을 하거나, 저녁에는 종종 친구를 만나 맥주를 한잔 하는 그런 일상.

때마침 날은 선선했고, 머리칼을 흩트리는 서늘한 바람이 반년 전 가을과 너무나도 유사해서, 나를 둘러싼 그 모든 것들이 너와의 기억은 잠시 꾸었던 꿈이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어. 내 주변 그 누구도 너를 알지 못하니까. 너를 빼고 모든 것이 그대로였으니까.


– 굴욕감에 침잠된 채로 밤을 지새웠고, 이미 나라는 사람은 없어져버린 게 아닐까, 하는 마음이 되었다고. 그런데도 어김없이 날은 밝았고 여전히 자신이 세계 속에 존재하며 출근도 해야한다는 사실을 마주해야 했다. 억지로 출근해서 하루를 보낸 그날 저녁, 이상하게도 그는 결국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출처. <일의 기쁨과 슬픔>




원래의 삶으로 돌아갔는데, 이상하게도 내 마음 한구석이 빈 것처럼 그렇게나 허전할 수가 없었어. 정말 이상하지. 정말로.
내딛는 인도 위 발걸음은 트렘펄린을 타다 내려온 사람처럼 붕 떠있었고 나는 이질감에 비틀거렸어. 그게 너 때문이었어. 전부.

그날 밤은 홀로 미지근한 위스키를 마셨어. 아주 오랫동안, 얼음 없이.


다음날, 나는 너에게로 돌아갔어. 그렇게 알게 되었지. 이건 습관이 아니라 사랑이었다는 걸. 착각은 너가 아니라 내가 하고 있었구나.

이제는 너와 함께한 시간이 꿈이 되는 게 아니라, 너가 없었던 그 하루가 잠시 겪은 악몽이 되는구나.